갤러리
GANGWON COMPREHENSIVE MUSEUM
박물관 소장 유물 이야기 - 고려청자
고려청자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자기(瓷器) 중 푸른 빛이 나는 도자(陶瓷)를 이르는 말입니다. 청자는 먼저 철분이 조금 섞인 흙(白土)으로 그릇을 빚은 후 철분이 1~3% 함유된 장석유(長石釉)를 바릅니다. 그리고 섭씨1,250~1,300도에서 환원염(還元焰,외부의 공기를 차단해 내부의 공기를 다 태움)으로 구우면, 유약 속 철분이 청록색으로 변하면서 청자가 만들어 집니다. 상감기법이란 무늬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무늬를 낼 부분에 음각으로 파낸 후 흰 색과 붉은 색 흙을 채워 무늬의 색이 달라지게 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이러한 상감기법은 고려 도공들의 창의(創意)로 개발되었으며, 세계 도자 역사상 독보적인 장식 기법으로서 고려청자의 우수성을 보여줍니다. 상감기법으로 제작한 운학문 매병은 고려청자 절정기(12C)의 면모를 볼 수 있으며, 세계가 인정한 고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2020.08.09
박물관 소장 유물 이야기 - 투탕카멘의 관
관(Coffin)은 피장자의 신체를 대신하는 대체물인 동시에 미이라를 보호하는 곽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투탕카멘의 미이라를 보관하였던 관입니다. 투탕카멘은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고대 이집트의 정치·종교적 최고 통치자, 왕)입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파라오로 등극하였지만 권력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하고 18세에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파라오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린 나이(9세)에 파라오로 등극한 투탕카멘은 자손도 없고, 재위 9년간의 기록이 없어 역사속에서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1922년 ‘왕가의 계곡’에서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된 그의 무덤은 발굴이후 황금의 보고로써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오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신적인 존재인 파라오는 다시 살아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파라오가 죽으면 장기들은 꺼내어 ‘카노푸스 단지’에 담아 보관하고, 시신은 곱게 싸서 미이라로 만들어 관속에 보관하였습니다. 이렇게 행한 이유는 그 영혼이 다시 몸에 들어가 부활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2020.08.09
박물관 소장 유물 이야기 - 불가리아 국왕 페르디난트 1세 유품
• 페르디난트1세는 불가리아의 제1대 차르(황제)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태어났으며, 작센코부르크고타 가의 분가인 코하리가 출신입니다. • 14K 골드·자개 장식 펜, 1915년 - 펜은 Sofia(불가리아 수도)에 있는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페르디난트1세에게 1915년 전달된 것으로 미국의 “Salz Bross”사가 특별 제작한 것입니다. 왕의 모노그램인 ‘F1’이 뚜껑 중앙에 새겨져 있습니다. 펜은 14K골드 플라크와 검정색의 고무마개 부분까지는 진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별히 고안된 나무케이스가 있으며 왕의 모노그램과 루비(왕관의 중앙부분)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 은과 에나멜로 만들어진 명예훈장 - 리본은 불가리아 국기 모양이며, 페르디난트 왕의 모노그램 ‘ F ’가 훈장 중간에 새겨져 있습니다.
2020.08.09
박물관 소장 유물 이야기 - 동굴곰
동굴곰은 오늘날 곰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생존당시 동굴을 은신처로 사용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화석이 동굴에서 발견되어 동굴곰이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체형은 앞발이 뒷발보다 길고 상체가 발달되었으며, 뒷발은 짧고 근육질이었습니다. 이것은 600kg에 육박하는 육중한 몸을 지탱하는데 효과적 이였을 것입니다. 여기 동굴곰은 우랄산맥에서 발견된 것으로 크기가 2.4m이며, 무게 600kg 으로 추정됩니다. 고고학 기록에 따르면, 동굴곰은 인류와 수 천년 동안 주거지를 놓고 경쟁하며 동시대를 살아왔습니다. 근거로는 동굴곰의 화석에서 당시 인간이 도축한 흔적과 돌로 만든 창끝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들 둘 다 동굴곰을 사냥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동굴곰은 마지막 최대 빙하기(약 2만6천년 전 ~ 약 1만2천년 전)가 시작된 이후인 2만4000년 전에 멸종하게 됩니다.
2020.08.09
박물관 소장 유물 이야기 - 칠현금
고금은 중국의 대표적인 현악기로 금(琴)또는 칠현금(七絃琴)이라고도 합니다. 7줄의 현은 5음 음계로 조율되며, 음량이 작고 음색이 부드러워 자연경관이 뛰어난 장소에서 연주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후당 때 만들어진 것으로 칠현금은 중국의 순임금이 만든 오현금을 주나라 문왕 때에 칠현금으로 개조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고구려 때 이것이 수입되어 왕산악에 의해 육현금으로 개조되어 조선시대까지도 연주되었습니다. 고금을 마스터하는 기술은 궁극적으로 조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통치의 기술과 닮아 있다고 간주되어 고금 연주기법을 이해하고 연마하는 자는 실질적으로 좋은 통치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중국의 학자들은 반드시 연마해야 할 네 가지 기예 중 하나이며, 그 중 으뜸으로 여겨졌습니다.
2020.08.09
박물관 소장 유물 이야기 - 주묵 (朱墨)
청나라의 유명한 장인이었던 왕근성(汪近聖)이 고가정(古柯庭)에서 만든 붉은 먹입니다. 먹은 벼루에 물을 붓고 갈아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하는 문방사우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먹’이라고 하며 중국에서는 ‘묵’이라고 부릅니다. 명 · 청대의 먹은 품질 면에서 최고 수준이었고, 금 · 은 · 옥보다 귀하게 여겨졌으며 부장용품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유명한 장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먹의 진품은 상당한 귀물(貴物)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2020.08.01
박물관 소장 유물 이야기 - 백자청화운룡문호 (白磁靑畵雲龍文壺)
·백자 청화 구름 용 그림 항아리 ·시대 : 조선중기 (15C) 백자청화는 순도 높은 백자에 청색의 코발트 안료로 무늬를 그리고 그 위에 투명유약을 입혀 환원염(還元焰, 외부의 공기를 차단하여 도자기에 포함되어 있던 산소를 태워 흙 본연의 색깔을 내게하는 방법)에서 구워낸 도자기를 말합니다. 중국의 경우 14C초에 본격적으로 생산되었으나, 우리 나라는 14C 말에 전래되어 15C 중엽부터 생산된 것으로 전합니다. 백자청화의 회화적인 문양은 일반 도공의 솜씨가 아닌 도화서 화원의 전문가적인 솜씨를 엿볼 수 있는데, 이것은 관(官)주도 수공업체제로써 광주관요(廣州官窯, 경기도 광주에 설치된 관영도자기제조소)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곳에서 제작된 청화백자는 담담하고 한정된 청화문과 볼륨있는 부드러운 기형(器形)이 합쳐져 고려청자와는 다른 견실한 낭만성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도자기를 살펴보면 두 줄의 청화(靑華) 띠를 두른 구연부가 직립하여 솟아 있고, 어깨로부터 굽까지 완만한 S자형 굴곡을 보이는 백자호(白磁壺)입니다. 용이 구름에 몸을 싣고 발톱과 이빨을 드러낸 채 용틀임하는 모습이 청화(靑華)로 그려져 있으며, 구연부 밑의 여의두문(如意頭文)과 용 주위 운문(雲文)의 둘러싸임은 장식적인 면모를 더하고 있습니다. 여의두문(如意頭文)은 본래 승려가 독경이나 설법 등을 할 때에 지니는 도구인 여의에 연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의란 마음을 상징하며 그 모양은 구름으로 나타내어 이와 같은 문양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용은 모든 자연현상을 주재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만물 조화의 능력을 갖춘 신령스러운 영물, 권위의 상징으로써 임금의 권위를 비유합니다. 구름이란 천신이나 신령들이 타는 것일 뿐 아니라 만물을 자라게 하는 비의 근원이라 여겨 구름은 장수와 함께 왕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2020.07.31
박물관 소장 유물 이야기 - 어전용상
중국 청나라 황제가 업무를 볼 때 사용했던 탁자와 의자입니다. 용상에 수많은 용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이유는 용이 왕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12지간(띠) 중 용은 다른 지간(동물)의 특징을 하나씩 가져와 전체 형상을 이루고 있어 그 모습 자체가 조화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며, 비와 바람을 다스리고 여의주로 신기한 조화를 부리기도 합니다. 왕도 하늘과 땅의 중재자로서 천지만물을 조화로 다스린다고 여겼습니다.
2020.07.31